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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노트 2

‘두려워서 잠도 못 자요’ 

공포 기억 제거할 수 있을까

강봉균 교수팀-공포 기억 사라지는 메커니즘 규명




 


우리의 경험은 기억이라는 형태로 뇌에 저장되어 나중에 회상된다. 어떤 기억은 쉽게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과거의 공포스러운 기억은 지워내기도 힘들고 오랜 상처를 남긴다.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의 심각한 공포 기억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과연 공포 기억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것일까.    


글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4종류의 시냅스의 수상돌기 가시(Dendrite spine) 크기를 분석해 공포기억의 학습, 소멸 그리고 재학습에 의한 구조적 변화를 관찰했다.


1949년 캐나다 신경심리학자인 도널드 헤브(Donald Hebb)는 기억이 뇌의 ‘시냅스’에 저장될 것이라는 ‘기억 저장 위치’의 가설을 제시했다. 시냅스는 고속도로의 톨게이트처럼 신경세포(뉴런)와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지점으로, 신경세포와 신경세포가 전기신호를 주고받을 때 시냅스를 거친다. 뇌 과학자들은 실제로 헤브의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하지만 인간의 뇌에는 신경세포가 수백억 개 존재하고, 신경세포 하나마다 시냅스가 수천 개에 달해, 결국 수백조 개에 이르는 시냅스를 일일이 확인해 가설을 증명하기란 어려웠다. 


한편 뇌 과학자들의 오랜 연구를 통해 뇌 안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는 좌우 측두엽에 존재하는 해마임이 알려졌다. 단, 해마 내부 어디에 어떤 방법으로 기록되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마치 기억이 USB 메모리에 저장된다는 사실까지는 알고 있지만, 텍스트로 작성해 저장한 파일인지 또는 디지털 신호를 파일로 저장했는지 전혀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던 중 2018년 생명과학부 강봉균 교수팀이 실험을 통해 기억을 저장하는 시냅스의 존재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도널드 헤브가 가설을 제시한 지 약 70년 만의 일이다. 교수팀이 ‘기억 저장 시냅스’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신경세포에 있는 시냅스를 종류별로 구분할 수 있는 기술(dual-eGRASP)을 개발한 덕분이다. 이는 형광물질을 이용해 시냅스의 기능을 두 가지 색으로 구분하는 기술이다. 


이를테면 형광물질을 해마의 신경세포에 집어넣은 쥐에게 전기충격을 가해 공포를 약하게 또는 강하게 학습시킨 다음, 만약 공포 기억이 저장될 때 신경세포가 활성화된다면 그 시냅스 말단에 노란색 형광이 나타나도록 했다. 그 결과 공포 기억이 생성될 때마다 신경세포(engram cells)에 달린 수상돌기 말단의 많은 시냅스에 노란색 형광이 나타났다. 또 그때마다 엔그램 세포의 수상돌기가 커지고, 시냅스의 수가 증가했다. 뇌에서 기억이 저장되는 구체적 위치, 즉 ‘기억 저장 시냅스’를 찾아낸 것이다. 청록색 형광은 공포 기억의 저장에 관여하지 않는 시냅스들을 식별해 주는 신호로 쓰였다. 이 연구에 대해 강봉균 교수는 ‘30년 연구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연구 결과’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8월, 교수팀은 공포를 관장하는 뇌의 편도체에서 공포 기억이 사라지는 원리까지 규명했다. 당시 교수팀은 실험 대상 쥐에게 특정 주파수의 소리를 30초간 들려준 뒤, 소리가 종료되기 바로 전 발바닥에 2초간 약한 전기충격을 가하는 학습을 세 차례 반복해 공포 기억이 형성되도록 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전기충격 없이 특정 주파수의 소리만 들려줘도 공포감으로 쥐의 행동이 얼어붙었다. 그리고 며칠 뒤 공포 기억이 형성되었던 쥐에게 학습에 사용했던 소리만을 반복적으로 들려줬지만 쥐는 더 이상 소리로 인한 공포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공포 기억이 사라진 것이다. 


이 실험 과정에서 교수팀은 자체 개발했던 Dual-eGRASP 기술을 이용해 편도체의 기억저장 시냅스가 어떠한 구조적 변화를 보이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공포 기억이 생겼을 때는 기억저장 시냅스의 크기가 커졌다가 공포 기억이 약화되면 다시 작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동일한 공포 기억을 학습시키고 나서 시냅스를 관찰하니 작아졌던 시냅스가 커져 원래의 크기로 회복되었다. 공포 기억이 생성되고 소거될 때마다 기억저장 시냅스의 크기가 바뀌는 현상을 나타낸 것이다.


뇌 과학계에는 공포 기억 소거법에 대한 두 가지 학설이 있다. 하나는 기존의 공포 기억이 새로운 기억으로 덧씌워져 억제된다는 학설이고, 다른 하나는 공포 기억 자체도 약화해 지워질 수 있다는 학설이다. 그동안은 나쁜 기억은 새로운 기억에 의해 잠시 희미해질 뿐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교수팀이 기억저장 시냅스가 약화하면서 나쁜 기억도 제거될 있다는 희망적인 증거를 발견하며 후자의 학설에 힘을 보탠 셈이다.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뉴런(Neuron)> 8월 6일 자에 발표되었다.


두렵고 무서운 감정, 공포.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던 이 기억의 제거를 가능하게 만드는 교수팀의 연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강봉균 교수는 앞으로 ‘기억 저장 시냅스’의 크기를 물리적으로 조절해 기억의 범위를 선택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지, 또 시냅스를 인위적으로 변화시켰을 때 다른 기억 상태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등을 연구할 계획이다. 교수팀의 연구가 상용화로 이어져 심리 장애 치료를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