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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노트 1

30년 성장 추락기를 막을

열쇠는 무엇인가

『모방과 창조』 



 

1990년 봄, 시카고대 대학원생이던 필자는 한국경제의 고속성장 원인을 설명하는 경제성장 모형을 발표하고 있었다. 세미나가 끝나갈 무렵 교수님 한 분이 질문을 던지셨다. “한국경제가 미래에 언제까지 고속성장을 지속할 것이라 예상하는가?”. 30년은 지나봐야 답을 알 수 있는 이 질문은 이후 필자의 머릿속에 남아 평생의 연구 질문이 되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필자는 한국경제의 성장경로를 계속 추적해 왔다. 

글 김세직 사회과학대학 경제학부 교수






『모방과 창조』는 30년 넘게 한국경제의 성장경로를 추적하면서 발견한 한국경제의 가장 중요한 원리를 알리기 위해 쓴 책이다. 그중 하나는 지난 30년간 우리 경제를 좌우해 온 ‘5년 1% 하락의 법칙’이다. 이 법칙에 따라 우리 경제의 성장능력을 나타내는 장기성장률은 5년에 1%포인트씩 30년 동안 규칙적으로 하락해 왔다. 그럼에도 역대 정부는 이를 저지하기 위한 근본 정책 없이 단기적인 경기부양책만 되풀이해 왔다. 그 결과 우리는 연 8% 이상 고도성장을 하던 1960년 이후 1990년부터 30년 성장 추락기를 맞고 있다.

30년 성장 추락기의 가장 큰 원인은 인적자본 축적의 실패 때문이다. 성장의 주 엔진이었던 인적자본 축적이 정체되면서 경제성장은 물적자본 축적에만 주로 의존했고, 결국 인적자본과 물적자본이 동시에 하락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성장률도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창조적 인적자본’을 향한 투자가 필요하다. 모방형 인적자본이 기존 지식이나 기술의 모방을 통해 축적한 인적자본이라면, 창조형 인적자본은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스스로 생각해내고 만들어내는 능력 혹은 그 능력을 통해 축적한 인적자본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남의 것을 열심히 베끼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 그리고 공짜로 쓸 수 있는 기술이 널려 있었기에 모방형 인적자본 축적이 쉬웠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모방형 인적자본의 가치는 급격히 하락했고, 창조형 인적자본을 축적해 놓지 못했던 우리로선 지속적인 성장엔진을 켤 수 없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창조형 자본주의 경제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창조형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모방형 인적자본뿐만 아니라 창조형 인적자본의 재산권과 인센티브까지 보장한다. 나아가 국민들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능력인 창조적 인적자본을 효율적으로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제도가 있다. 그 안에서 창의적 아이디어들은 기업의 상품으로 속속 전환되며 양질의 일자리가 계속 만들어진다.

창조형 자본주의의 신세계를 여는 열쇠는 아이디어 재산권 보호에 있다. 지금이라도 모든 종류의 독창적 아이디어에 정부가 인증을 통해 재산권과 소유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또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로 판명되면 전산으로 등록해 정부가 그 아이디어를 만든 사람의 이름을 붙여주는 ‘전 국민 아이디어 등록제’를 추진해야 한다. ‘어떻게’가 없어도 ‘무엇’을 만들지에 대한 아이디어만으로도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하며 아이디어 절도를 막을 시스템 역시 하루빨리 정비해야 한다. 

더불어 문과 출신 학생들이 창조적 발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동안 공무원들이 정책 아이디어를 독점하다시피 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창의적 정책 아이디어가 부진했다. 문과 출신 학생들이 정부 정책에 관한 아이디어를 함께 고민한다면 일부 정부 공무원의 임무로만 인식되어 오던 정책 아이디어에 대한 폭이 넓어지고 전 국민 아이디어 등록제도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30년 전 시카고대 교수님이 필자에게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대한민국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달려 있었다. 만약 대한민국이 지금이라도 창조형 자본주의 국가로의 변환을 선택한다면, 우리나라가 창출하는 창의적 아이디어 수가 세계 기술진보를 주도해왔던 미국보다도 빠르게 증가해 고속성장을 회복하고 이를 장기간 지속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방의 시대’를 넘어 ‘창조의 시대’를 맞도록 인식과 제도 모두 혁신적으로 바꾸는 것이 30년 성장 추락기를 막을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