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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낮은 곳에서

펼친 인술(仁術)

김인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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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스물아홉 청년 의사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낮은 곳의 사람들이었다. 40여 년간 이들과 함께했던 김인권 원장은 백발의 신사가 되었지만, 환자들을 위하는 마음과 온기는 여전히 뜨겁다. 지난 1983년부터 2019년까지 국내 최초 한센병 치료기관인 여수애양병원에서 근무하며 환자들을 돌본 김인권 원장이 제11회 서울대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이제는 젊은 의사들과 함께 환자들을 위하는 길로 나아가고 싶다는 그를 만났다. 



의사로서의 
소명을 새겨준 소록도

김인권 원장이 한센인들을 처음 만난 곳은 1977년 10월의 소록도였다. 당시 전문의가 되려면 6개월 동안 의사나 의료기관 시설이 없는 의료 취약 지역에서 일해야 하는 규정이 있었는데 주변의 반대에도 국립소록도병원을 선택한 것이다. 파견 근무를 마친 그는 1980년부터 3년간 공중보건의로 다시 소록도로 돌아갔다. 그땐 생후 30일 된 딸과 아내도 함께했다.
“한센병은 전염성이 크지 않고 초기에 치료하면 후유증 없이 낫는 병인데, 당시만 해도 한센인에 대한 인식이 워낙 좋지 않다 보니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방법이 없었어요. 제가 가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았고, 내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곳보단 나를 꼭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간 것이지요.”

나균에 의해 감염되는 한센병은 치료하지 않으면 신경계 합병증으로 이어진다. 촉감, 통각, 온도 감각이 소실되고 팔꿈치에 나균이 침범하면 손가락이 갈퀴처럼 변형된다. 손가락과 발가락 감각이 소실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외상을 입게 되면 말단 부위가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외모를 변하게 하는 이 같은 증상 때문에 한센병 환자들은 늘 사회에서 고립되기 일쑤였다. 소록도는 한센인 수용소가 자리했던 섬으로 한국의 아픈 역사를 가장 많이 품은 곳인다.
“‘좋은 일을 하신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지만 전 애초에 소록도에 좋은 일 하러 간 게 아니라 제가 좋아서 간 것이에요. 차별과 편견 속에서 긴 시간을 보내왔음에도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한센인들이 좋았고, 이들을 치료해주는 것이 보람되었거든요. 또 소록도에서 만난 의사들도 달랐어요. 환자를 병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소통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마음이 통하면서 소록도로 돌아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죠.”


여수애양병원에서 보낸 
34년

3년간 공중보건의 활동을 마무리 지을 때쯤 의사로서의 소명은 더욱 선명해졌다. 다시 서울행을 택하는 대신 김인권 원장은 국내 첫 민간 한센인 치료기관인 여수애양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983년 5월 여수애양병원 정형외과 과장으로 부임해 한센병과 소아마비 환자 치료에 전념한 그는 이후 예방접종을 시작하며 질병이 급격히 줄자 인공관절 수술에 매진했다. 당시 여수애양병원은 50병상이 넘는 꽤 큰 병원이었지만 의사 수는 그를 포함해 3명에 불과했다. 밤 10시까지 쉼 없이 환자를 돌보는 하루가 이어졌고, 많을 때는 하루 스무 번가량 인공관절 대체 수술을 진행했다.

“여수애양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 대부분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어요. 다른 데서 치료를 받다가 결국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치료 비용을 낮추다 보니 자연히 많은 환자를 치료할 수밖에 없었지요.”
1년 중 수술이 없는 열흘, 구정 전후로는 해외에서 수술을 이어갔다. 소록도 병원에서 느꼈던 타국에 대한 고마움과 마음의 빚 때문이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그는 케냐와 파키스탄, 미얀마, 라오스 등에서 인공관절 대체 수술을 이어갔고 그곳의 의료진을 한국에 데려와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과거 해외 선교사나 이들을 지원한 미국 내 단체들에서 받았던 것들을 필요한 다른 곳에 돌려줄 때라 생각했습니다. 물질적으로 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을 베푸는 일이에요. 저희가 받았던 것 역시 핵심은 사랑이었으니까요. 앞으로 더욱 그런 일들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의사와 환자 아닌,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 되길

부원장과 원장을 거쳐 2016년 여수애양병원에서 정년 퇴임한 그는 3년간 명예원장으로 환자들을 돌봤다. 50병상이었던 여수애양병원은 200병상을 갖추고 매년 11만 명이 내원할 만큼 크게 성장했다. 현재 김인권 원장은 죽전에 위치한 서울예스병원에서 여전히 환자들과 함께하고 있다. 지금도 여수를 비롯해 먼 곳에서 수시로 그를 찾아오는 이유는 의술(醫術)이 뒷받침되는 인술(仁術)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멀리서 찾아오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그래도 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낍니다. 아마도 ‘의사와 환자’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로 만난 인연이라 오래가는 것 같아요. 여수애양병원에 있었을 때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진료실 분위기가 싫어 진료실과 수술방을 여러 개 만들고 서서 진료하면서 돌아다녔어요. 환자를 더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환자 입장이 되어 진료하고 싶었거든요. 누군가를 치료하는 것이 수직적인 상하관계의 일이 아닌 그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내 이웃과 함께하는 일로 인식되었으면 좋겠어요.”





김인권 원장은 지난 2015년 서울대 졸업식에서 “너무 좋은 직장을 찾지 말라”는 축사로 화제를 모았다. 인생의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선택을 하고 후회를 남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지난 34년간 가장 낮은 곳에서 환자를 돌봐온 그 역시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자부심이 큰 힘이자 원동력이 되었다. 김인권 원장은 “후배들 역시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선택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내가 행복한 일을 하고 살길 바랍니다. 행여나 내가 한 선택으로 실망하고 좌절하게 되더라도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지 말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처음 소록도에서 느꼈던 그 열정을 잊지 않고 환자들을 돌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