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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찾는

인류의 미래

이석재 철학과 교수, 장대익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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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3월, 미국에서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돌연변이로 발생한 스페인 독감(Spanish flu)은 미군의 이동과 함께 유럽 및 전 세계로 확대되며 최대 5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로부터 100여 년 뒤, 인류는 다시 한번 전염병으로 인한 위기에 봉착했다. 수십만 년을 거쳐 지금의 인류가 있기까지 시간은 늘 비슷한 사건을 통해 인간이 생각할 바를 던져주었다. 철학과 이석재 교수, 자유전공학부 장대익 교수에게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인류의 역사를 관통한 비슷한 시간들


장대익 교수 : 시간의 반복은 진화학 안에서도 논란이 되는 주제입니다. 미국의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1989년에 발간한 저서 『원더풀 라이프』에서 ‘진화는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며 반복될 수 없다’라는 견해를 옹호했어요. 생명의 역사라는 테이프를 처음으로 돌린 뒤 다시 재생했을 때, 이를 수백만 번 재생하더라도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류 종으로 다시 진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6천 5백만 년 전, 소행성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럼 포유류의 세계가 열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영장류가 아닌 다른 종이 등장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죠. 이를 개념적으로는 진화의 우발성(Evolutionary contingency)이라고 일컫는데 저 역시 이에 동의해요. 물론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한데 시간이 그저 반복된다거나 나선형으로 흐른다고 정립하여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석재 교수 : 시간은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개념이기에 고대부터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저도 장 교수님처럼 시간이 반복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데요. 그런데 우리 인류가 이해하고 있는 시간, 즉 호모 사피엔스들이 살아갈 때의 어려움으로 시간의 폭을 좁히면 비슷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게 사실이에요. 코로나19 사태도 우리가 ‘전례 없는’이란 수식어를 늘 동반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염병의 등장은 종종 있었어요. 멀게는 흑사병부터 스페인 독감, 홍콩 독감, 에볼라바이러스,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에 이르기까지 인류 공중보건의 역사 속에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전염병이 계속 발생해왔거든요. 역사가 반복된다고 확정 지을 수는 없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왜 비슷한 문제들이 계속 발생할까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생명의 우발성에 동의한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출처 : BBVA Openmind


장대익 교수 : 맞습니다. 단순히 시간이 반복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보다 왜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생각해봐야 해요. 저는 그 답이 의외로 굉장히 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재나 과거나, 17세기나 기원전이나 호모 사피엔스는 늘 생존과 번식의 문제를 겪어왔거든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존재로서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려야 하고, 협력해야 하고, 독이 있는 음식이나 포식자, 전염병 같은 위험으로부터 회피할 수 있어야 해요. 이를 진화심리학에서는 적응 문제(Adapted problem)라고 부릅니다. 어느 시기이건 간에 인간이 당면한 문제는 같고 그것을 해결하려다 보니까 역사적인 정황은 달라도 인간의 행동은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이죠. 최근 현실과 가상이 결합한 ‘초월(Meta) 세계(Universe)’, 메타버스가 대두되고 있는데 그 안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봅니다. 생존이라는 인간의 본성이 같기에 양태는 변할 수 있어도 행동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죠.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


이석재 교수 : 인류 역사에 비슷한 시간이 반복된다는 관점에서 봤을 때, 현재는 근대 유럽처럼 엄청난 과학적 성과가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된 시기와 비슷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발전한 과학기술과 전통적인 가치관이 공존하고, 동·서양이 한꺼번에 뒤섞인 용광로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기대가 되는 활기찬 시대인 것이죠. 과거 당시의 문제를 어떻게 헤쳐나갔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문제도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대익 교수 : 맞습니다. 아까 교수님께서 예로 든 팬데믹으로 이야기하자면 과거에도 팬데믹 상황에서 감염 위험이 있는 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늘 존재해왔어요. 그건 시대와 상관없는 인간의 정서적·인지적 혼란이자 생존을 위한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의 이 코로나19를 과거처럼 혐오와 배제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부분을 반드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인은 타인과의 교류가 활발하고 독립해서 생활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인간만의 공감 능력, 역지사지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어야 해요. 그리고 그것이 과거 팬데믹 상황에서도 필요했던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1918년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2년 동안 전 세계에서 5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출처 : The Times



이석재 교수 : 장 교수님 의견에 공감하며 덧붙이자면 지금 우리에게 있는 것들도 활용해야 합니다. 하나는 과학의 힘이에요. 감염경로 추적부터 예방, 백신까지 실제로 코로나19을 극복하는데 과학이 활용되고 있어요. 두 번째는 이를 다루는 태도입니다. 과학적 성과가 있더라도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비과학적인 편견이 존재한다면 과학은 절대 힘을 발휘할 수 없어요. 현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안티백신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그것이 과학의 문제인지 과학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인지 따져보면 명백히 후자입니다. 지금 혼란스러운 이 상황에서 가치판단을 내리고 방향을 정할 때 과학을 비롯한 인문학적인 고민이 필요해요. 


장대익 교수 :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은 인간이 문명을 발생시키는데 필요한 자질이기도 합니다. 문명은 현상을 이해하고 법칙을 발견해 활용하는 ‘생태적 지능’이 반드시 필요해요. 그리고 그에 더해 누구를 위해, 왜 사용해야 하는지 성찰이 없으면 문명이 생긴다 해도 금방 붕괴할 수 있거든요. 이번 팬데믹 상황에서 부정확한 정보가 빠르게 퍼져나가는 ‘인포데믹(Infodemic)’이 전 세계적으로 큰 문제가 됐어요. 과거라면 그 정보와 반대되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SNS와 알고리즘이 발달하면서 원치 않는 의견은 아예 듣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성을 만들게 된 것이죠. 이 같은 과학기술로 촉발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중 하나가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 나와 다르더라도 타인의 생각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입니다. 



위기를 극복하는 연대와 협력의 힘 


이석재 교수 : 장 교수님이 창업하신 교육 플랫폼 벤처 ‘트랜스버스’도 그와 같은 생각에서 출발한 것으로 압니다. 줌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는 오프라인 교육을 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해 벤처를 설립하셨다고 들었어요. 


장대익 교수 : 코로나19로 비대면 줌을 통해 수업이 이뤄지면서 여러 문제가 나타났어요. 그중에서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는 친구나 선·후배들로부터 배우는 동료학습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수업으로 배우는 것도 있지만, 타인을 통해 습득하는 동료학습은 공감 능력을 가진 인간만이 할 수 있거든요. 그걸 촉진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다 보니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했어요. 최근에 ‘에보클래스’라는 웹 기반의 통합 플랫폼을 출시했는데 이를 발전시켜 온라인 교육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게 되길 바랍니다. 


이석재 교수 : 도전을 거듭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이런 자리를 통해 장 교수님과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돼 기쁩니다. 이 글을 보는 독자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고요. 지금 학생들이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데 반드시 지나갈 거라고 확신해요.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의 80년, 100년 인생을 사는데 자산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또 학교에 다니는 동안 너무 큰 성과를 얻으려고 하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잘해온 것처럼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우리가 함께 이겨내길 바랍니다. 


장대익 교수 : 저도 좋아하는 이 교수님과 귀한 시간을 갖게 돼 영광이고요. 지금이 우리에게 위기인 것은 맞아요. 교수님 말씀처럼 이 시기를 견디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보다 창의적으로 디자인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독서를 통해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다양한 이슈들을 이해해보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해본다면 코로나19 이후, 인류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소중한 발판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