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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노트 2

배터리 없는

웨어러블 기기 시대 열릴까

홍용택 교수팀 - ‘피부에 착’ 붙어 체온으로 전기만드는 열전소자 개발




1770년 독일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토마스 제베크는 가족의 바람대로 의대를 나와 개업했지만 의사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과학자, 그것도 물리학자가 되고 싶었고 결국 아마추어 물리학자로 이런저런 실험을 하며 여유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50대가 된 1821년 어느 날, 제베크는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구리와 비스무트 두 금속을 연결한 두 지점의 온도를 달리했더니 자기장이 발생하면서 전류가 흐르는 게 아닌가. 2년 뒤 출간한 논문에서 제베크는 이 현상을 ‘열전효과(Thermoelectric Effect)’라고 불렀다.


글.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그 뒤 두 금속 대신 두 유형의 반도체를 쓰면 더 큰 전압이 생긴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반도체 열전소자를 이용한 기기도 나왔다. 예를 들어 우주탐사선엔 방사성동위원소가 붕괴할 때 나오는 열을 이용한 열전발전기가 장착돼 있다. 그리고 자동차 엔진의 폐열을 전기로 전환하면 연료를 3%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직 열전효과를 이용한 제품은 얼마 되지 않는다. 비용 대비 효과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인체에 부착하는 웨어러블 기기의 전원으로 열전효과를 이용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열전소자를 써서 체온과 주위 온도의 차이, 즉 열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하는 ‘에너지 하베스팅(Energy Harvesting)’ 기술이다. 21세기의 반도체라는 배터리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몸에 착 달라붙는 웨어러블 제품에 부착하는게 거추장스럽고 특히 충전을 놓쳐 방전이라도 되면 무용지물이다. 만일 피부 온도와 주변 온도의 차이가 만드는 전기로도 웨어러블 제품을 작동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꿈의 실현은 이 정도 온도 차이에서도 충분히 열전효과를 낼 수 있는 열전소자를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전기·정보공학부 홍용택 교수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소프트융합소재연구센터 정승준 박사팀과 함께 꿈의 실현에 한 걸음 다가간 열전소자를 개발하는 데 성공해 지난해 11월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높은 열전 효율에 대량생산 시스템에도 적용할 수 있는 ‘신축성 열전소자’를 개발했다. 연구자들이 사용한 열전재료는 텔루루화비 스무트(Bi2Te3) 합금을 기반으로 만든 반도체 두 종(전자가 움직이는 n형과 정공이 움직이는 p형)으로 오늘날 널리 쓰이는 것이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이 열전재료와 유연한 전극, 고효율 열전도체를 결합해 피부 같은 곡면에 밀착하는 열전소자를 만들어 열전효과를 극대화했다는 것이다. 열전효과는 온도 차이가 클수록 높다.


실온에서 피부와 공기의 온도 차는 10도 내외인데, 기존 열전소자로 웨어러블 기기를 만들면 실제 열전재료에 적용되는 온도 차는 크게 줄어든다. 피부나 공기에서 전극까지 열이 전달되는 사이에 열 손실이 꽤 일어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기존 구리 전극 대신 20%까지 늘어날 수 있는 유연한 은나노와이어 전극을 만들었다. 그리고 전극과 피부 및 공기 사이를 단순히 얇고 부드러운 실리콘 (PDMS)으로 덮는 대신 전극 아래는 은-니켈 입자를 넣고 자기장을 가해 자발적으로 구조화시킨 부드러운 열 전도체를 배치했다.


c20983aa11c1655828556edb3f85a994_1620828506_0886.jpg 홍용택 교수팀이 개발한 유연한 열전소자와 LED가 연결된 센서가 부착된 주방 장갑.

이 장갑을 끼고 물체에 잡을 때온도차가 어느 범위를 넘으면 LED가 켜지면서(빨간 H)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해준다.



PDMS는 고무처럼 유연하지만 열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구조화된 은-니켈 입자는 열전도가 뛰어나다. 그 결과 피부와 공기의 온도 차가 10도일 때 PDMS만 쓸 때는 실제 열전재료에 적용되는 온도 차가 5.1도에 불과한 반면, 부드러운 열 전도체가 들어있는 피막을 쓸 때는 8.6도나 돼 얻어지는 전압이 56%나 더 컸다. 그리고 은나노와이어 전극과 은-니켈 입자/PDMS 피막이 꽤 유연해 굴곡진 피부 표면에 부착해도 빈틈없이 착 달라붙는다. 피부와 웨어러블 기기 사이의 공간이 있으면 열전달 과정에서 손실이 커 열전효과가 반감된다.


연구자들은 3.9×4.4cm2 면적에 열전단위(n형 반도체와 p형 반도체 한 쌍으로 이뤄진 열전재료) 440개를 심을 수 있는 자동화 제작 시스템을 개발했다. 유연하면서도 효율이 높은 열전소자는 피부에 부착해 몸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웨어러블 기기뿐 아니라 주위와 온도 차가 나는 물체에 접촉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기에도 적용할 수 있다. 논문에도 이런 예가 하나 소개돼 있다. 유연한 열전소자와 LED가 연결된 센서를 부착한 ‘고온 경고 장갑’이다. 이 장갑은 닿은 물체와 온도 차가 특정 값 이상일 때만, 즉 전압이 일정 범위를 넘을 때만 LED가 켜져 경고한다. 연구자들은 앞으로 접촉면의 전기저항을 더 낮추고 열전도도는 더 높여 열전 효과를 최대화한 열전소자를 만들어 웨어러블 기기와 사물인터넷(loT) 기기에 적용해 상용화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열전효과 발견 200주년이 되는 올해에 이 꿈이 현실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