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Cover story
대화의 길
SNU inside
News & Event
Home
Cover story
대화의 길
SNU inside
News & Event
닫기
연구노트 1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

중국을 바라보다

김영민 정치외교학부 교수 - 「중국정치사상사」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그 대상만 공부한다는 것은 패착으로 끝나기 쉬운 접근법이다.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한국만 공부해선 안 된다. 중국은 과거부터 한국의 정치적 조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라이다. 중국에서 발달한 사상이 한국인들 생각의 언어로 쓰였던 만큼, 한국을 이해하려면 중국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중국정치사상사』는 연구대상에 대한 과도한 흠모나 혐오를 배제하고, 그간의 연구를 집약한 결과물이다.


글. 김영민 정치외교학부 교수 




‘무엇을, 누구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죠?.’ 이에 대한 가장 분명한 대답 중의 하나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왜냐? 그것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지 않았을 때, 엄청나게 파괴적인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운명이겠는가?) 태어난 이상 영양을 섭취해야 하는 운명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거식증에 걸려 죽을지 모른다. 먹은 이상 배설해야 한다는 운명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창자를 쪼개는 변비에 시달릴지 모른다. 육식동물에게 풀만 먹인다면? 엄청난 두뇌를 가진 아인슈타인에게 공부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성기를 가진 변강쇠에게 성교를 일체 허락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처럼 악몽 같은 예를 한없이 들 수 있다.


어떤 운명은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어느 여자·남자가 자신의 운명인지는 때로 판별하기 용이하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분명한 사안들도 있다. 먹는 일, 자는 일처럼. 정치학, 정치 사상을 공부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바로 자신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불가피한 운명 중의 하나는 남과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당신이 집단생활이나 공동체적 삶을 싫어하건 좋아하건 상관없다. 어떤 식으로든 타인과 ‘공존’하지 않고서는 삶은 유지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타인과의 공존은 운명이다. 정치학이란 그 운명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정치사상이란, 그 운명의 사랑에 대해 근본에서부터 생각해보는 일이다.


그렇다면 왜 동아시아 정치사상인가? 이것은 동아시아 정치사상사가 서양의 정치사상보다 더 재미있거나 더 발달했거나, 해당 연구자들이 더 똑똑해서거나, 더 영양 상태가 좋거나, 더 잘 씻어서가 아니다. 이 역시 자신이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동아시아 문명권 내의 존재라는 운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일단 중요하다. 각 문명권에 대한 본질주의적 접근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인간 삶의 보편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이러한 문명적 운명은 일정 부분 회피하기 어렵다. 그리하여 동아시아 정치사상의 공부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동아시아라는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를 사랑하기 위한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신이 동아시아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상관없다. 이 사안과 어떤 식으로든 마주하지 않으면, 당신의 정신은 어느 정도 소외된다.


그렇다면 운명과도 같은 동아시아 정치사상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무조건 동아시아 ‘정치사상만’ 공부하는 것이 동아시아 정치사상을 가장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믿는 것은 1년 365일 매시간 매초를 사랑하는 애인과 무조건 함께 보내는 것이 그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믿는 것만큼이나 미련한 일이다. 운명과의 연애는 그것보다 훨씬 더 섬세한 테크닉을 요한다.


c20983aa11c1655828556edb3f85a994_1620827508_6763.jpg
 『중국정치사상사』 

 

최근에 출간한 『중국정치사상사』는 그러한 점을 고려하여 연구 대상에 대한 과도한 흠모나 혐오를 배제하고, 민족주의적 서술이나 본질주의적 서술을 피해 가면서 그간의 연구를 집약한 결과물이다. 몇 년 전 출간한 영어본 『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를 저본으로 했으나 이번에 펴낸 『중국정치사상사』가 기존에 출간한 『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의 번역은 아니다. 처음에는 그 영문 저서를 단순히 번역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했으나 정작 작업을 시작해보니 목표로 하는 독자, 학계, 지성계가 다른 만큼 프로젝트의 성격도 달라져야 함을 깨달았다. 결국 이 책은 『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 를 저본(底本)으로 하되, 많은 내용을 추가하고 수정하여 다른 문체로 쓴 새로운 중국정치사상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