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Cover story
대화의 길
SNU inside
News & Event
Home
Cover story
대화의 길
SNU inside
News & Event
닫기
커버스토리

상상과 현실 사이

두 개의 우주 이야기

윤영빈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조성희 영화감독




지구 밖으로 위성을 쏘아 올리기 한참 전부터 예술가들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망을 품었다. 인류의 끊이지 않던 지적 호기심은 과학과 만나 현실이 되었고, 우주는 더 이상 미지의 세계가 아닌 지구의 미래가 되었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공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실현한 두 사람이 만났다. 한국형 발사체를 위해 로켓 엔진의 핵심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항공우주공학과 윤영빈 교수와 국내 최초 우주 SF 영화 <승리호>를 연출한 조성희 감독이다. 두 사람 모두에게 우주는 끊임없는 꿈과 열망을 품게 한 고맙고 특별한 공간이다.





 

 

8bfcd2433f353b9a13386fb66f40c09e_1620967118_0248.jpg

2092년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 <승리호>에는 우주 쓰레기를 수거하는 청소부들이 등장한다. 

출처 : Netflix




현실로 다가온 <승리호> 속 장면들
 

윤영빈 교수 : 우주 공학자로서 영화 <승리호>를 무척 인상 깊게 봤습니다. 지금부터 70년 후의 미래세계인 2092년의 우주 공간을 다루고 있는데 사실 영화 속 많은 장면이 30년 안에 이뤄질 수도 있는 일이거든요. 국내에서 우주 영화를 제작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감독님께서는 어떻게 <승리호>를 기획하게 되셨나요?

 

조성희 감독 : <승리호> 기획은 사실 굉장히 단순한 계기로 이뤄졌어요. 10여 년 전쯤, 지인과 우주 쓰레기(Space Debris)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인간이 쏘아 올린 우주 발사체에서 떨어져나온 부품이나 고장난 인공위성, 각종 파편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우주기술이 발달한 미래에는 누구나 쉽게 우주에 가게 되면서 새로운 직업이 생길 것 같았고, 그때쯤 지구의 모습은 어떨지 상상하게 됐죠.


윤영빈 교수 : 감독님 말씀대로 우주 쓰레기는 전 세계에서 해결방안을 찾고 있는 문제입니다. 1mm 넘는 크기의 쓰레기가 1억 개 이상, 초속 7~8km로 지구 궤도를 돌며 떠다니고 있지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쓰레기끼리 충돌해 더 많은 파편이 생기고 인공위성에 부딪히거나 지구로 떨어지게 됩니다. 각국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영화에서 ‘업동이’ 란 로봇이 작살을 던져 쓰레기를 잡는 것도 실제로 사용되는 제거 방법 중 하나예요. <승리호> 제작에 앞서 감독님께서 많은 연구를 하셨다는게 느껴졌습니다.


조성희 감독 : 교수님 앞에서 감히 ‘연구했다’라고 말씀드리긴 어려울 것 같아요. (웃음) 우주 쓰레기 수거는 영화에서 나온 방법 외에도 강력한 자석을 이용해 쇠붙이를 수거하는 방법, 냉동 가스를 분사해 얼려서 떨어뜨리는 방법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아무래도 영화다 보니 멋진 액션 장면으로 나타낼 수 있는 작살로 수거하는 방법을 선택했어요. 지금 이뤄지고 있는 것들 중 가장 비효율적인 수거 방법이죠.




영화나 현실이나 늘 어려운 우주


8bfcd2433f353b9a13386fb66f40c09e_1620967831_1163.jpg지구 궤도에 분포한 우주 쓰레기를 도식화한 그림. 빨간색은 위성, 노란색은 로켓 본체, 녹색은 임무 관련 개체, 파란색은 파편을 나타낸다.

출처 : 유럽 우주국(ESA) 



윤영빈 교수 : <승리호>는 우주의 모습을 실감 나게 보여준 국내 첫 번째 영화라는 점에서 저에게도 뜻깊었습니다. 텔레비전으로만 보기 아쉬울 정도로 컴퓨터 그래픽(CG)이 굉장히 실감 났어요.


조성희 감독 : 감사합니다. 사실 기술적인 면만 본다면 국내 아티스트들의 수준이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다만, SF영화의 경우 투입되는 자본이나 기간, 여건이 맞아야 제작할 수 있어 시도하기 어렵죠. 그러고 보면 영화나 현실이나 우주는 참 어려운 것 같아요. 현실에서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윤영빈 교수 : 영화에서의 어려움과 비슷한 것 같아요. 워낙 많은 자본이 필요한 연구이기에 우리나라보다 한참 전에 발사체 개발을 시작한 러시아나 미국에 비하면 기술력이 부족하죠. 또 로켓 발사체 기술은 국방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기술을 가진 어느 나라도 제3국에 이전해주지 않아요. 서울대 로켓추진연구실도 러시아 대학과의 민간교류를 통해 기술을 배울 수 있었어요. 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위성기술은 강대국 못지않은 수준까지 도달했습니다. 발사체 기술이 뒤떨어져 있는데 오는 10월에 발사가 예정된 누리호가 성공한다면, 우리나라 기술만으로 만든 발사체를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국내 우주개발에 있어 올해가 굉장히 중요한 해예요.


조성희 감독 : 다른 나라가 독점한 기술을 배우고 실현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 교수님도, 함께 연구하는 학생들도 무척 존경스럽습니다. 최근에는 우주개발이 민간사업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들었어요.


윤영빈 교수 : 맞습니다. 작년 7월, 민간 우주탐사기업 미국 스페이스X에서 최단기간에 로켓을 재활용하는데 성공한 것은 우주개발 판도를 바꿀 중요한 사건이었어요. 첫 민간 유인우주선 ‘크루 드래건’ 발사에 사용했던 팰컨9 로켓을 재활용해 51일 만에 다시 발사하는데 성공했지요. 지금은 퇴역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 발사에 회당 약 1조 5,000억 원이 들었는데 스페이스X가 이번에 쓴 비용은 1,627억 원이에요. 40년 만에 로켓개발 비용을 100분의 1로 줄인 것이죠. 전문가들은 앞으로 더 단시간에 많은 비용을 감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렇게 되면 <승리호> 속 배경도 70년 보다 더 빨리 실현될 겁니다.


조성희 감독 : 제가 만든 영화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니, 정말 기대되고 흥미롭습니다. 다만, 지구의 황폐화로 다른 행성에 이주하는 것만큼은 현실이 되지 않길 바라요. (웃음)



 

무한한 상상력을 품게 하는 특별한 공간


8bfcd2433f353b9a13386fb66f40c09e_1620968412_7379.jpg

2018년 진행된 누리호 시험발사체의 발사 성공 모습. 지난 3월 마지막 성능 시험을 통과한 누리호는 오는 10월 발사만을 앞두고 있다.

출처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조성희 감독 : 신기하게도 우주는 이공계 분야임과 동시에 굉장히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공간인 것 같아요. ‘인간은 우주에서 한낱 먼지에 불과하다’라는 말이나 블랙홀을 넘어가면 시공간이 바뀐다는 상대성 이론 등 기분을 묘하게 하는 과학적인 논리가 많거든요. 실제로 창작업계에서 우주나 양자물리학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준비하고 있어요. 비록 허구지만 이를 통해 만들어질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죠.


윤영빈 교수 : 감독님께서는 허구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런 창작자들의 상상력은 연구를 시작하는데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 다. 인간이 달에 가게 된 계기도 상상에서 시작했어요. 1865년 출판된 쥘 베른의 SF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에는 대포에 사람을 넣어 달까지 쏘는, 당시로서는 굉장한 황당한 이야기가 나와요.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그 소설 덕분에 달을 향한 관심이 무척 높아졌습니다. 소설이 나오고 100여 년 뒤인 1969년 7월 20일, 인간은 진짜로 달에 발을 디뎠죠. 정확한 이론과 수치에 근거해 연구를 진행하는 저는 감독님의 상상력이 부럽기도 합니다. 어떻게 영화감독이 되셨는지 궁금해요.


조성희 감독 : 사실 뚜렷한 계기가 잘 기억나진 않아요. 영상 만드는 것을 좋아해 작은 CG 회사도 운영했었는데 정신 차려 보니 영화감독이 되어 있더라고요. 서울대에 다닐 때는 연극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지금도 꾸준히 공연하고 있는 ‘서울미대극예술연구회’에서 대본도 써보고 연기도 했었죠.  저는 오히려 조금의 꼼수도 통하지 않는 우주 공학을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웃음)


윤영빈 교수 : 저는 7살 때 인간이 달에 가는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직접 봤어요. 우주 경쟁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셈인데 그 장면 하나에 우주에 대한 꿈이 생기더라고요.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해야겠다는 결심은 고등학교 때 했어요.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항공우주에 대한 기반이 열악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NASA에 들어가겠다고 결심했죠. 시민권이 필요해 그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25년간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오랜 시간 우주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8bfcd2433f353b9a13386fb66f40c09e_1620968577_387.jpg
우주 엘리베이터를 상상해 3D 랜더링한 모습.
출처 : 미국항공우주국(NASA)



조성희 감독 : 강대국에 한참 뒤떨어져 있던 우리나라의 우주 공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것은 교수님을 비롯한 연구자들과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국민 한 사람으로서 감사드리고 자랑스럽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오늘 <승리호>를 만들면서 갖고 있던 우주에 대한 궁금증을 교수님과 나누게 돼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우주를 향한 교수님과 서울대 로켓추진연구실의 열정처럼 저 역시 이야기를 만들고, 상상하는 제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윤영빈 교수 : 저 역시 무척 즐거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영화 많이 만들어주시길 바라며 감독님의 영화가 우리나라의 어린 학생들과 젊은이들한테 꿈을 키울 원동력이 되어주길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