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U research

인간다움

글. 김기현 철학과 교수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타인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존중하고, 공존하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공감을 연료로, 이성을 엔진으로, 자유를 지지대로 인간답게 사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인간다움은 나를 둘러싼 사람을 평가할 때, 또는 한 시대를 평가할 때 가장 흔하게 쓰이는 표현이다. “저 사람 참 인간다워”, “저 사람 인간도 아니야”, “우리 시대가 점점 인간다움을 잃어가고 있어” 등의 표현들은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다운 것일까? 대답이 쉽지 않다. “인간도 아니야”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짐승이야”, “짐승 같아”라는 표현으로 이어진다. 인간답기 위해서는 인간을 짐승으로부터 구분시켜주는 어떤 품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품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예술적 표현 능력에서, 어떤 사람은 도구를 사용하는 점에서, 어떤 사람은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에서 그 차이를 찾으려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다움을 이야기할 때 가장 주목하는 것은 ‘관계에 있어서의 인간다움’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에 있어서의 인간다움, 타인을 대할 때의 인간다움이다.

관계에 있어서의 인간다움은 우선 공감을 첫째 요소로 한다. 다른 사람의 정서와 공명하는 것이 공감이다. 다른 이의 기쁨이 나의 기쁨으로 느껴지고, 그의 고통이 나의 고통으로 느껴지는 그런 기제가 바로 공감이다. 이런 공감의 능력이 있었기에 어미는 자식의 울음에 반응하여 자식을 돌보아 그의 생존을 지켜줄 수 있었고, 인간종이 멸종하지 않고 만물의 지배자가 되도록 도울 수 있었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으로 느껴지기에 우리는 사이코패스가 되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는 공동체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공감은 편파적이다. 나와 가까운 이에게는 잘 작동하지만, 나와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잘 작동하지 않는다. 내 동생의 울음은 나를 슬프게 하지만, 내 친구 동생의 울음은 그만큼 울림이 없다. 이런 편파성을 넘어 모든 사람을 인간으로 동등하게 존중해주는 사람이 인간답다. 인간에 대한 보편적 존중으로 인도하는 것이 이성이다. 이성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행위가 일반적인 원칙에 합당한가를 성찰하는 능력이다. “나는 너를 때려도 되지만, 너는 나를 때리면 안 돼”라는 말을 들을 때, 뭔가 잘못됐다는 자각을 주는 것이 이성이다. 이렇게 이성은 양심의 근거를 마련해주면서, 공감의 편파성을 보완한다.

인간다움을 이루는 이성은 개인의 자율성에서 나와야 한다. 한 사람이 비록 사회가 요구하는 공동체적 규범에 충실하게 따르며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 규범이 세뇌에 의하여 그 사람에게 각인되어 그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인간답다고 할 수 없다. 외부로부터의 조종에 의하여 움직이는 사람은 외부 세력의 노예와 다를 바가 없고 그런 사람은 인간답지 않다.

관계에 있어서의 인간다움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공감을 연료로 하고, 자율적 이성을 엔진으로 하여 타인도 나처럼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인격적 존재임을 인정하는 품성.

공감 능력은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하여 갖추어졌고, 이성은 기원전 6~7세기에 문명사회에서 성장하였으며, 개인의 자유는 비교적 최근인 13세기 이래로 자리를 잡아 지금은 모든 문명사회 헌법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오랜 인고의 과정을 통하여 형성된 인류의 자산인 인간다움이 여러 방향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우리 마음의 어느 구석에서는 “인간도 알고 보면 영리한 짐승일 뿐이야”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SNS가 관계를 맺는 주된 통로가 되면서, 공감 능력은 쇠퇴해간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우리의 선택을 대신하면서 인간의 자율적 판단 능력은 점차 무력해진다. 보편적 원리를 묻고 찾는 지적인 작업이 외주화되면서, 공공의 윤리를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은 외부의 조종에 취약하게 노출되어간다.

4차 산업혁명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복된 미래를 가져다주기 위해서는 편리함만이 아니라, 우리가 오랜 역사를 통하여 일구어낸 정신적 가치의 현주소도 돌아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