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타인과 함께
천천히 보폭을 맞추는 삶

김재왕 변호사
(서울대학교 공익법률센터 임상교수)

김재왕 변호사는 국내 1호 시각장애인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중도 시각장애인이 된 그는 현재 공익법률센터의 임상교수이자 변호사로서 누구보다 절실하게 혹은 절박하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장애인이 일상에서 겪는 차별과 부조리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며

김재왕 변호사의 삶은 굽이굽이 극적이었다. 비장애인으로 태어나 25살에 시력을 잃기 시작하면서 시각장애인이 되었고, 생물학을 전공했던 청년은 로스쿨 진학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시각 정보 대신 소리 정보로 남들보다 어려운 여건에서 공부를 마친 그는 2012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 이후 장애인 인권을 위한 입법과 장애인차별구제 소송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주목받았다. 그리고 현재 그는 공익법률센터 임상교수로서 실제 진행 중인 사건을 갖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중이다.
“많은 분들이 시각장애인이 된 이후의 시간을 궁금해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딱히 드릴 말씀이 없어요. 좌절을 특별히 이겨냈다기보다는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순응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지요. 이런 기조는 제가 로스쿨에 진학하고 장애인 인권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크게 달라진 점이 없습니다. 늘 고민하고 길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온 거죠.”
김재왕 변호사는 유순한 말투, 엷은 미소로 대수롭지 않은 듯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그간 그가 거둔 성과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놀이동산 시각장애인 탑승제한 관련 차별 소송, 스크린도어가 없는 승강장 부근 선로에 추락한 시각장애인의 손해배상 소송, 공무원 면접에서 직무와 무관한 장애 관련 질문을 받은 청각장애인의 소송 등 수많은 승소 사례를 통해 장애인들의 권익을 찾아주고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킴으로써 제도는 물론 사회적 인식까지 바꿔왔다.

공존의 시대, 포용이 필요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김재왕 변호사가 시각장애인이 되고 나서 마주한 세상은 지금껏 비장애인으로 살아온 세상과 너무도 달랐다.
“모든 일상에 불편함이 생겼어요. 시각장애인으로서 느낀 가장 큰 불편은 정보 접근의 어려움입니다. 대부분의 정보 전달이 시각적으로 많이 이루어지거든요. 홈페이지에도 이미지로 만들어진 부분이 굉장히 많잖아요. 휴대폰 애플리케이션도 마찬가지지요. 그나마 홈페이지 접근성은 많이 좋아졌는데 이건 관련 법이 생긴 덕분이에요. 하지만 애플리케이션 같은 경우는 아직 법이 없기 때문에 접근이 어렵죠. 그 외 이동의 불편함이라든가, 휠체어를 탄 사람들은 이용이 어려운 키오스크까지 장애인이 접하는 불편함은 일상 모든 부분에 있습니다.”
장애인들의 삶의 불편함과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온 시간들은 필연적으로 그에게 서로 다른 존재의 ‘공존’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만들었다.
“타인과의 공존은 전체적으로 삶의 속도를 늦추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의 속성상 효율성을 추구하고 속도를 중시하는데 이게 사실 피곤한 일이거든요. 장애인, 노인, 어린이, 임신이나 출산을 겪는 여성 등 사회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은 좀 느립니다. 속도가 빠르지 않은 사람들을 포용하면서 자신의 빠르기를 좀 늦추고 주변을 둘러보며 같이 간다면 조금 덜 피곤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시각장애인으로 사는 삶은 결코 녹록지 않다. 여전히 불편함과 차별은 존재하고 인식의 변화는 느리다. 그러나 김재왕 변호사는 그 이면에 감춰진 희망 또한 또렷이 보는 인물이다. 자신을 지지하고 응원해준 가족과 지인들, 보이지 않은 곳에서 자신에게 기회를 주고 또 발판이 되어준 다양한 제도를 통해 “불편함이 곧 불가능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그. 앞으로도 장애인 인권과 관련된 제반 활동을 꾸준히 하며 교수로서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김재왕 변호사에게 타인과의 공존이란 조금 느린 걸음으로 보폭을 맞춰 함께 걷는 것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공익법률센터 (SNU Public Interest & Legal Clinic Center)
2019년 5월에 출범했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에 대한 임상법학(리걸클리닉) 교육, 학생들의 프로보노(Pro Bono,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제공하는 법률서비스) 활동 지원, 공익진로 개발 및 지도, 지역사회와 연계한 법률구조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